본문 바로가기
독서/한국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

by 1004goa 2024. 8. 30.
반응형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은이), 문학동네, 2018-11-23


차례

서문 웬만하면 걸어다니는 배우 하정우입니다 · 6

1부 하루 3만 보, 가끔은 10만 보

말 한마디에 천릿길 걷는다
577킬로미터 국토대장정 끝에 내가 배운 것 · 19

기분 탓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는 그냥 걸어 · 29

왜 자꾸만 나를 잃어버리지?
내 숨과 보폭으로 걸어야 할 때 · 35

하체가 상큼해지는 시간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나의 걷기 다이어트 · 42

내 인생의 마지막 4박 6일
걷는 사람들의 천국, 하와이 · 48

휴식은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아니야
하와이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어떤 날 · 56

‘생보’와 ‘제뛰’를 사수하라
참 쉬운 하루 3만 보 걷기 교실 · 61

10만 보 일기
사점을 넘어 계속 나아가기 · 70

눈물고개를 지나면 반드시 먹고 쉴 곳이 나올 거야
우리집 큰 마당, 한강 따라 걷기 · 84

하와이 걷기 코스
제2의 집 · 92

매직 아워를 걷다
한겨울 걷기의 즐거움 · 102

2부 먹다 걷다 웃다

복기의 시간
왜? 왜? 왜! 수많은 ‘왜’들과 대화하다 · 111

신데렐라의 비밀
직장인처럼 운동선수처럼 · 117

먹다 걷다 웃다
먹방의 시작은 일상 · 123

밥은 셀프
하정우식 얼렁뚱땅 요리법 · 131

맛있는 국을 끓이는 사소하지만 위대한 비밀
맛집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배운 신의 한 수 · 146

아침 걷기와 야구
추신수 선수와 나의 인생 곡선 · 149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이불 밖이 쑥스럽게 느껴지는 날 · 154

힘들다, 걸어야겠다
바쁘고 지칠수록, 루틴! · 161

모두를 웃게 하진 못했지만
굳이 에둘러 돌아가는 이유 · 169

사람의 표정을 읽고 저장하는 일
감독의 눈높이 의자에 앉아서 · 177

꼰대가 되지 않는 법
자리를 비워주는 사람이 아름답다 · 181

언령을 믿으십니까
도심을 걷다가, 문득 · 185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팀플레이의 즐거움 · 190

내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걷기 모임의 올드보이들 · 195

걷는 자들을 위한 수요 독서클럽
걷기와 독서의 오묘한 공통점 · 203

3부 사람,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

가만있지 못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한우물만 못 파요 · 213

나를 확신할 수 없다
믹싱, 완벽한 소리를 붙들려는 불완전한 인간의 분투 · 223

왜 사랑받지 못했을까?
그럼에도 감독의 길을 계속 가는 이유 · 227

남자다운 게 뭔가요?
두려움에 대하여 · 232

내가 동행을 선택하는 법
신과 함께 · 238

두 다리로 그린 이탈리아 미술지도
관광 아닌 유학 같은 여행 · 243

슬럼프 선생님
배우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 271

내가 만난 노력의 장인들
노력의 밀도를 생각한다 · 279

걷는 자를 위한 기도
인간의 조건 · 288

SPECIAL THANKS TO · 294

 


출판사 제공 책소개

걸어서 출퇴근하는 배우, 하정우

그에게 걷기란,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
나만의 호흡과 보폭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 나를 일으켜 계속해보는 것


영화배우, 감독, 그리고 그림 그리는 사람. 스크린과 캔버스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활동을 펼쳐온 배우 하정우가 이번엔 새 책을 들고 에세이 작가로 찾아왔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하정우 에세이의 제목은 『걷는 사람, 하정우』.
이 책에서 하정우는 무명배우 시절부터 트리플 천만 배우로 불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울을 걸어서 누비며 출근하고, 기쁠 때나 어려운 시절에나 골목과 한강 변을 걸으면서 스스로를 다잡은 기억을 생생하게 풀어놓는다. 이 책에는 ‘배우 하정우가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과 ‘자연인 하정우가 실제로 두 발로 땅을 밟으며 몸과 마음을 달랜 걷기 노하우와 걷기 아지트’, 그리고 걸으면서 느낀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배우 하정우는 하루 3만 보씩 걷고, 심지어 하루 10만 보까지도 기록한 적 있는 유별난 ‘걷기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손목에 걸음수를 체크하는 피트니스밴드를 차고서 걷기 모임 친구들과 매일 걸음수를 공유하고, 주변 연예인들에게도 ‘걷기’의 즐거움과 효용을 전파하여 ‘걷기학교 교장선생님’ ‘걷기 교주’로도 불린다.
그는 강남에서 홍대까지 편도 1만 6천 보 정도면 간다며 거침없이 서울을 걸어다닌다. 그에게 웬만한 이동거리의 단위는 ‘차로 몇 분 거리’ ‘몇 킬로미터’가 아니라 ‘도보로 편도 몇 분’이 더 익숙하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러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8시간에 걸쳐 걸어간 적도 있다는 그에게 ‘걷기’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숨쉬고 명상하고 자신을 돌보는 또다른 방식이다.
“엄청 바쁠 텐데 왜 그렇게 걸어다니나요?”
“언제부터 그렇게 걸었어요?”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걷고 또 걷는 배우 하정우를 향한 이 질문들에, 이제 그가 이 책 『걷는 사람, 하정우』로 답하려 한다.
하정우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는 서점에 풀리자마자 주문이 쇄도해 출간 당일 2쇄에 돌입하며, 연말 서점가와 출판계에도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돌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걷기밖에 없는 것만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연기를 보여줄 사람도, 내가 오를 무대 한 뼘도 없었지만, 그래도 내 안에 갇혀 세상을 원망하고 기회를 탓하긴 싫었다.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_서문에서

강남에서 홍대까지 걷는다, 하루 3만 보, 가끔은 10만 보…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걷고,
맛있는 것을 먹고, 많이 웃고, 오래 일하고 싶은
자연인 하정우의 발자국


영화 속 찰진 ‘먹방’으로도 자주 회자되는 그는 스스로 ‘걷기를 즐기지 않았더라면 족히 150kg은 넘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실제로도 잘 먹고 많이 먹는다. 그러나 그는 좀 덜 먹고 덜 움직이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의 맛있는 것들을 직접 두 손으로 요리해 먹고 두 발로 열심히 세상을 걸어다니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이 세상의 맛있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충분히 만끽하고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한강 주변을 ‘내 집 앞마당’이라 생각하고 걷는다. 이 책에는 그가 길 위에서 바라본 ‘매직 아워’의 하늘, 노을, 무지개, 그의 새벽 걷기의 쉼터이자 간이카페가 되어주는 한강 편의점, 함께 걷는 길동무, 종일 걸은 후에 그가 직접 요리해 먹는 단순하지만 맛깔나는 음식 등, 그가 채집한 일상의 조각들이 스냅사진으로 실려 있다.
영화 <터널>을 촬영할 때, 터널 안에 매몰된 ‘정수’의 초췌하고 마른 몸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중 단기간에 혹독한 다이어트를 해야 했을 때도 그가 택한 것은 역시 ‘걷기’였다. 그러나 그에게 걷기는 단지 몸관리의 수단만은 아니다.
하정우에게 걷기란 지금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두 다리만 있다면 굳건히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슬럼프가 찾아와 기분이 가라앉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촬영한 영화에 기대보다 관객이 들지 않아 마음이 힘들 때, 그는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채 남 탓을 하고 분노하기보다 운동화를 꿰어신고, 그저 걷는다.
걸으면서 복기하고 스스로를 추스른다.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지금 이 순간조차 긴 여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리고 결국은 잘될 것이라고.

2015년 내가 주연과 감독을 맡은 <허삼관>이 개봉했을 때, 나는 한창 <암살>의 주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허삼관>은 기이할 정도로 관객이 들지 않고 있었다. 부랴부랴 이유를 찾다가, 나 자신을 질책하다가, 눈떠보면 <암살> 촬영 시간이 닥쳐와 있었다.
촬영장에 가는 것조차 너무나 힘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분명 나를 위로하려 할 테니까. 어떤 사람은 별일 아닌 척 담담하게 나를 토닥일 테고, 또 누군가는 까맣게 타는 내 속마음을 눈치채고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조심스러워할 것이다. 그 모두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나는 더 불편했다.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의 아픈 마음을 어떻게 털어놓아야 하는 건지, 사람들의 위로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촬영장에서 유쾌하게 농담을 건네고 사람들을 웃기던 하정우는 사라져버리고, 무슨 짓을 해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어둡고 우울한 남자만 거기 남아 있었다.
아침에 촬영장으로 향하는 출근길, 나는 한 시간씩 기도했다. 제발 내가 맡은 연기만은 무사히 소화하게 해달라고. _「왜 자꾸만 나를 잃어버리지?」, 35~36쪽

‘믿고 보는 배우’로 불리는 하정우에게도 성공과 실패는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거듭 찾아온다. 때론 댓글에서 “하정우씨, 감독은 하지 말고 그냥 배우만 하세요!” 같은 신랄한 평도 뜬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간다.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과 제작자라는 멀고 험하지만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길로 조금 더 멀리 걸어가보려 한다.

사실 배우로서든 감독으로서든 새 영화를 시작할 때 나는 늘 두렵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나를 주저앉히거나 새로운 시도를 아예 못하도록 막지는 않는다. 또한 성공과 실패란 단순히 흥행의 그래프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허삼관>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나의 실패작’은 아니다. 내가 <허삼관>을 연출하면서 받은 선물들은 물질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누군가 내게 “하정우씨, 배우만 하세요”라고 말할 때 나는 예전에는 상처받았지만, 앞으로는 상처받지 않으려 한다. 그건 내가 배우로서는 대중들에게 꽤 친숙하고 그럭저럭 잘해왔다는 뜻 아닌가. 감독 하정우는 배우 하정우에게 빚졌지만, 언젠가는 감독 하정우가 배우 하정우에게 그 빚을 갚을 날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배우 하정우는 지금까지 많은 행운과 사랑을 누렸고 순탄한 길을 걸어온 편이지만, 스무 살에 연극무대에 오른 이후 서른 무렵 10년 만에 간신히 빛을 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영화감독 하정우는 이제 데뷔한 지 고작 몇 년밖에 안 된 신출내기다. 감독으로서의 성공과 실패를 운운하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_「왜 사랑받지 못했을까?」, 229~231쪽

화려한 필모그래피 너머
그가 흘린 땀과 간절한 기도의 기록―
하정우는 어떻게 영화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가


<군도> <암살> <터널> <베를린> <아가씨> <신과 함께> 등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 뒤에 숨어 있는 그의 땀과 기도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에세이를 읽는 특별한 즐거움이자 감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범상치 않다고들 하지만, 그는 작품을 결정할 때 ‘책’(시나리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들고 온 ‘사람’을 들여다본다. 그가 영화를 찍는 동안 동행으로 삼아야 할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온 사람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실제로 배우가 처음 받아보는 단계에서 이미 완벽하게 짜인 시나리오는 드문 편이라고 그는 말한다. 영화 시나리오도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두 꾸려지면,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며 완성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1편과 2편 모두가 천만 관객을 넘어선 <신과 함께>에 합류하기로 결심할 때도, 그는 전작 <미스터 고>에서 처음으로 쓴 맛을 본 김용화 감독이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가족 이야기로 되돌아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판타지물이 성공을 거둔 사례가 드물고, 손익분기점이 까마득하게 높다는 점도 그의 결단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동행이 되어 한 편의 영화라는 먼 길을 함께 걸어가느냐였다.

<신과 함께?죄와 벌>은 알고 보니 김용화 감독이 실제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극에 담은 것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신과 함께> 1편을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진혼곡’이라 표현했다. 언뜻 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수적인 요인처럼 보이지만, 내겐 그것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 무엇보다 확실하고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나는 이 영화가 잘될 수 있다는 확실한 느낌을 받았다. 때로 이 확실한 예감은 영화에 관계된 누군가의 ‘절실함’에서 나온다. 나는 그의 절실함에 공감했고, 그의 동행이 되어주고 싶었다.
내게는 ‘어떻게 시나리오를 고르는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사람들과 일하길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이 더 맞는 것 같다. 배우가 받아보는 단계에서 사실 완벽하게 짜인 시나리오는 거의 없다. 시나리오는 언제나 배우와 스태프가 모두 구성된 후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한 절반 정도는 바꿀 생각을 하고 들어가는 거다. 나는 현재 시나리오의 반을 더 낫게 바꾸어나갈 열린 생각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 나와 절실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하길 좋아한다. _「내가 동행을 선택하는 법」, 239쪽

그가 걷기를 통해 배운 것은 걷기도, 일도, 인생도, ‘내 숨과 보폭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남 탓을 하고, 여건을 탓하고, 대중을 탓하고, 분위기를 따지는 법이 없다. 그저 건강한 두 다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앞에 펼쳐진 길을 기꺼이 즐기면서 걸어간다.
사람들이 쉽게 ‘성공’과 ‘실패’의 양극단으로 나누어 단정지어버리는 순간조차 자신이 끝까지 걸어야 할 긴 여정의 일부라 믿는 그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다보면, 문득 하정우처럼 내 숨과 보폭으로 걷고 싶어진다. 살아가면서 그 어떤 조건과 시선에도 휘둘리지 않고 두 다리만 있다면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걷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많이 웃고, 오래 일하고 싶은, 자연인 하정우의 발자국이 이 책에 활자로 남았다.
하정우에게 ‘걷기’는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계속되어야 할 ‘삶’ 그 자체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구나 겪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누가 얼마큼 빨리 벗어나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 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마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_「걷는 자를 위한 기도」, 291~292쪽)
 


책 속에서

신이시여!

당신께서 예비하고 계획하시는 일

그저 묵묵히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제게 건강한 두 다리만 허락해주십시오.

 

서문 웬만하면 걸어다니는 배우 하정우입니다 · 6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걷기밖에 없는 것만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내 안에 갇혀 세상을 원망하고 기회를 탓하긴 싫었다.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1부 하루 3만 보, 가끔은 10만 보

 

말 한마디에 천릿길 걷는다

577킬로미터 국토대장정 끝에 내가 배운 것 · 19

- 서울에서 해남까지 장장 577킬로미터를 걷게 된 것은 그놈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어차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 우리가 길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몸의 땀냄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꿉꿉한 체취, 왁자한 소리들, 먼지와 피로, 상처와 통증.오히려, 조금은 피곤하고 지루하고 아픈 것들일지 모른다. 그러나이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기분 탓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는 그냥 걸어 · 29

- 고민이 있을 때 걷기를 선택: 일단 걷고 와서 고민하자, 걸으며 고민을 이어갈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걷는 동안 그 고민의 무게가 가벼워짐. 걷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너무 고프다. 몸을 움직이면서 고민과 고통을 비워낸 자리에 허기가 슬쩍 끼어드는 것이다. 먹으면서 문득 깜짝 놀란다. ‘나 방금까지 고뇌했던 사람이 맞나? 왜 이렇게 밥 맛이 좋지’, 밥 먹은 뒤엔 한숨 돌리고 샤워를 한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아까 무슨 고민을 했었는지 떠올려보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고민의 주제는 선명한데, 낮에 느꼈던 것만큼 중대하고 어려운 상황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분명히 심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엄청난 위기 같지는 않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나는 금방 곯아떨어진다. 단순하게도 인간은 몸을 움직이는 만큼 수면의 질이 높아지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민이 생기면 잠이 잘 안 와서 뒤척이고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고 그러지 않나? 그런데 오늘 나 아주 꿀잠 잘 것 같아.

- 고민하느라 기분이 별로였던 날이 가고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어제의 고민이 그다지 대단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만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걷기의 나비효과라고 부를 수 있을까?

- 기분에 짓눌려서 문제를 키우고 고민을 부풀린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왜 자꾸만 나를 잃어버리지?

내 숨과 보폭으로 걸어야 할 때 · 35

-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하체가 상큼해지는 시간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나의 걷기 다이어트 · 42

 

내 인생의 마지막 46

걷는 사람들의 천국, 하와이 · 48

휴식은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아니야

하와이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어떤 날 · 56

- 정작 일은 너무나 열심히 하는데 휴식 시간에는 아무런 계획도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대로 던져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치고 피로한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곧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기는 결과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피로를 잠시 방에 풀어두었다가 그대로 짊어지고 나가는 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처럼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 내 인생 마지막 46일이라 생각하고 떠났던 하와이에서 나는 온종일 걸었다. 걷고 먹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미친 일정으로 다녀온 하와이는 내게 미치도록 좋았던 휴식의 기억으로 남았다.

 

생보제뛰를 사수하라

참 쉬운 하루 3만 보 걷기 교실 · 61

- 오늘 우리가 고단함과 귀찮음을 툭툭 털고서 내딛는 한 걸음에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

- 사람들은 보통 하루 만 보를 걷기 운동의 기준점으로 삼지만 나는 3만 보 정도를 걷는다.

- 우선 아침에 눈뜨자마자 곧장 러닝머신 위로 올라간다. 러닝머신을 타고 오십 분 정도를 꼬박 걸으면 약 5천 보에서 6천 보가량이 찍힌다. 우리 걷기 멤버들 사이에서는 이 오십 분을 1교시로 친다. 1교시 오십 분을 걸은 후 십 분 쉬는 것이 우리의 규칙이다. 물론 시간과 컨디션에 따러 러닝머신 위에서 2교시까지 마칠 수도 있다. 그러면 이미 오전 10시에 만 보를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 생보(생활 속 걷기, 웬만하면 바퀴보다는 내 다리로 간다)

 

10만 보 일기

사점을 넘어 계속 나아가기 · 70

- 장거리를 걸을 때는 지치기 쉽다. 판단력도 흐려진다. 그러므로 걷는 시간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쉬는 시간이다.

- 걸은 후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얼음을 가득 채운 통에 묻어둔 캔 맥주. 혀 끝에 닿는 순간. 뇌가 얼음처럼 쩡, 하고 쪼개지는 것 같은 시원한 맥주의 맛. 하와이의 맥주는 종일 땀흘리며 걸은 자에게 주어지는 짜릿한 선물이다.

-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이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걷는다는 것. 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를 통해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대자연에 풀어둔 동물처럼 원 없이 걷고 먹고 숨쉰다. 때로는 이런 삶이 정말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건, 어쩌면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주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고, 이 길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부정하며 포기할 만하니까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었던 거다.

 

눈물고개를 지나면 반드시 먹고 쉴 곳이 나올 거야

우리집 큰 마당, 한강 따라 걷기 · 84

- 내가 사는 곳 주변에 내 이름을 붙인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된다.’

 

하와이 걷기 코스

2의 집 · 92

 

매직 아워를 걷다

한겨울 걷기의 즐거움 · 102

- 한참을 걷다 집으로 돌아와 패딩을 벗으면 어느새 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한겨울에 이렇게 땀이 많이 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반신욕, 족욕 준비, 뜨거운 코코아 한잔. 땀을 뺀 몸은 더없이 상쾌하고 달콤한 코코아는 꿀맛이다. 적당히 뜨거운 음료가 몸을 노곤하게 만들면서 안정감이 찾아온다. 어떤 생각을 해도 마음이 평화롭고 자유롭다.

- 나는 한겨울 오후 5시 무렵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 시간을 나는 걷기의 매직 아워라 부른다.

- 추위와 우울이 썰물처럼 밀려가고 저녁의 아늑함과 내 몸의 온기가 밀물처럼 다가오는 한겨울 오후 5시의 걷기

2부 먹다 걷다 웃다

 

복기의 시간

? ? ! 수많은 들과 대화하다 · 111

 

신데렐라의 비밀

직장인처럼 운동선수처럼 · 117

- “좋은 작품은 예술가가 안정적이고 반듯한 길에서 벗어나서 일탈하거나 방황할 때 나오지 않나요?”

사람들이 던지는 이런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좋은 예술과 안정적인 삶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좋은 작품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

- 내 몸과 삶에 나쁜 것은 내 작품에도 좋지 않다. 부정적인 충동은 절대 예술가의 연료가 될 수 없다. 예술가의 삶은 단 한순간 불타올랐다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작업하고 이를 통해 인간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한 걸음씩 진보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먹다 걷다 웃다

먹방의 시작은 일상 · 123

- 나는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 ... 유머는 삶에서 그냥 공기처럼 저절로 흘러야 한다.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면 이런 유머가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유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촬영현장에서도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웃기는 일을 좋아한다. 남을 웃기면서 나도 웃는다. 내 유머가 사람들을 웃게 할 때, 나는 내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된다.

대파 화분에 심어서 또는 수경재배

 

밥은 셀프

하정우식 얼렁뚱땅 요리법 · 131

- 생선살이 흐물거려서 팬에서 다 부서져버릴 것 같다 싶을 땐 나는 생선을 굽기 전에 우선 부침가루나 튀김가루를 묻힌다. 생선의 통통한 살이 흩어지지 않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생선껍질이 눌어붙어 설거지할 때 덜 힘들다. 부침가루나 튀김가루를 바른 생선은 몸통이 3분의 1 정도 잠기도록 팬에 기름을 충분히 둘러 살짝 튀기듯 구워주면 맛있다.

- 내 요리의 치트키는 고수. 오이무침에 고수를 넣으면 어마어마한 하모니를 느낄 수 있다. 나는 라면에도 고수를 넣는다. 고수를 약간만 듣어서 넣어주면 라면 국물이 좀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맛으로 탈바꿈한다.

- 라면을 끓이기 전에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파를 넣어서 파기름을 낸다. 이 파기름에 라면수프를 넣어서 소스를 만들 듯이 저어주다가 물을 넣고 끓인다. 그러면 약간 오가닉한 맛이 난다.

- 장조림을 만들려면 우선 소고기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둔다. 그리고 간장에 파뿌리와 청양고추, 양파, 통마늘을 넣고 팔팔 끓이는데 이때 미림이나 소주를 약간만 첨가한다. 적당히 짭조름하면서도 채소들의 단맛이 은은하게 우러난다면 망설이지 말고 고기를 투하한다. 그리고 쭉 조리면 장조림 완성

샐러드 드레싱은 올리브 오일과 소금이면 오케이

- 또띠아에 토마토페이스트를 살살 펴바르고 다진 양파를 듬뿍 올리고 치즈를 뿌린다. 버섯, 소시지, 살라미 등 맛깔나는 토핑을 추가해 오븐에 오 분이나 십 분 정도 구우면 훌륭한 씬피자 탄생

- 요리가 좋은 건 이번 한끼를 애매하게 실패했다 해도 반드시 만회할 다음 끼니가 돌아온다는 거.

 

맛있는 국을 끓이는 사소하지만 위대한 비밀

맛집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배운 신의 한 수 · 146

- 쌀뜨물로 끓인 미역국은 곡물에서 배어난 고소한 맛이 해산물과 고기를 휘감아서 한 차원 다른 국으로 업그레이드 해준다.

- 짝태를 손으로 찢어서 들기름에 들들 볶는다.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으면 물을 붓는다. 이때 주의사항은 물을 한 번에 들입다 붓지 않아야 한다는 것. 물을 조금씩 추가하면서 끓여야 한다. 약간만 붓고 바르르 끓으면 또 물을 붓고 다시 한소끔 끓으면 물을 추가한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국물이 뽀얗게 올라온다. 여기에 김치를 넣으면 김치북엇국이 되고 계란을 풀면 구수한 계란북엇국이 되는 것

 

아침 걷기와 야구

추신수 선수와 나의 인생 곡선 · 149

- 아침에 러닝머신을 탈 때는 주로 야구를 본다. 눈으로는 야구 경기를 보면서 두 다리는 계속 움직인다. 이 사소한 루틴에서 나는 아주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이불 밖이 쑥스럽게 느껴지는 날 · 154

- 아침이면 나는 생각을 멈추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거운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땅에 한 발을 내딛는다. 그저 한 다리를 뻗고 심호흡을 해본 것뿐인데 나는 어느새 몇 시간째 걷는 중이다. 땅은 자연이 만들어준 천혜의 러닝머신 같다. 일단 내가 밖으로 나가 한 발을 내딛기만 하면 땅이 자연스럽게 내 몸을 받치고 밀어준다.

- 단순한 행동과 결심이 힘이 세다. 일단 몸을 일으키는 것. 다리를 뻗어 한 발만 내디뎌보는 것.

-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그러니 도무지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아침엔 일단 일어나 한 발, 딱 한 발만 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한 걸음이 가장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온갖 고민과 핑계가 나를 주저앉히는 힘보다 내 몸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 힘들 때 자신을 가둬놓는 것. 꼼짝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감옥의 수인이 되는 것. 이런 것도 다 습관이다.

 

힘들다, 걸어야겠다

바쁘고 지칠수록, 루틴! · 161

- 내가 아는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환자들에게 그게 무엇이든 루틴을 정해놓고 어떤 기분이 들든 무조건 지킬 것을 권한다.

- 나는 사람이 그다지 강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요인들로 불안정해지기 쉬운 동물이다. 마치 날씨처럼 매일 다른 사건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란 쉽지 않다. 변화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작은 물결에 배가 휩쓸려가서는 안 되므로 닻을 단단히 내려둘 필요가 있다.

- 나에겐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 위기상황에서도 매일 꾸준히 지켜온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 루틴의 힘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질 때, 우선 행동하게 하는 데 있다. 내 삶에 결정적인 문제가 닥친 때일수록 생각의 덩치를 키우지 말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살다보면 그냥 놔둬야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어쩌면 인생에는 내가 굳이 휘젓지 말고 가만 두고 봐야 할 문제가 80퍼센트 이상인지도 모른다.

모두를 웃게 하진 못했지만

굳이 에둘러 돌아가는 이유 · 169

 

사람의 표정을 읽고 저장하는 일

감독의 눈높이 의자에 앉아서 · 177

 

꼰대가 되지 않는 법

자리를 비워주는 사람이 아름답다 · 181

 

언령을 믿으십니까

도심을 걷다가, 문득 · 185

- 나는 별 뜻 없이 한 말도, 일단 입 밖에 흘러나오면 별 뜻이 생긴다고 믿는 편이다.

- 말에는 힘이 있다. 이는 혼잣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결국 내 귀로 다시 들어온다. 세상에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은 없다. 말로 내뱉어져 공중에 퍼지는 순간 그 말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비난에는 다른 사람을 찌르는 힘이, 칭찬에는 누군가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말을 최대한 세심하게 골라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내보내야 한다.

-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언령이라 부른다. 언령은 때로 우리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자신의 권력을 증명해 보이고, 우리가 무심히 내뱉은 말을 현실로 뒤바꿔 놓는다. 내 주위를 멤도는 언령이 악귀일지 천사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팀플레이의 즐거움 · 190

- 오로지 나만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작고 얕은 마음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책임을 밖으로 돌릴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화나고 억울한 마음뿐이다. 그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낟. 그러니까 남 탓은 나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 일의 결과에 상관없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던 연결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에 내가 연결돼 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감사는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 나를 충만하고 풍요로운 상태로 이끈다.

내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걷기 모임의 올드보이들 · 195

 

걷는 자들을 위한 수요 독서클럽

걷기와 독서의 오묘한 공통점 · 203

-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안다고 믿었던 서로의 마음속을 더 깊이 채굴하는 것과도 같았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어쩐지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서로의 일과 삶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 차올랐다.

 

3부 사람,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

 

가만있지 못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한우물만 못 파요 · 213

- 나는 한 사람 안에 잠재된 여러 가지 능력을 일생에 걸쳐 끄집어내고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이자 의무라고 본다. 그런 과정이 결국 나를 완성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 이제부터 가만있지 못한다고 말하는 대신 가만 있지 못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해야겠다. 그 능력 덕분에 배우, 감독, 제작자,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여러 직업을 한 번의 생에 동시에 살아가는 축복도 누리는 것일테니까.

 

나를 확신할 수 없다

믹싱, 완벽한 소리를 붙들려는 불완전한 인간의 분투 · 223

-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여정과 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지만, 결코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확신은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오만과 교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만약 어떤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면 후회나 미련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열심히 보낸 시간 자체가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감이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열심히 한 일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 나는 일할 때 막연한 느낌이나 주관에 치우치지 않도록 나 자신을 계속 점검한다. 누군가와 생각이 다를 때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나의 기분이나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왜 사랑받지 못했을까?

그럼에도 감독의 길을 계속 가는 이유 · 227

- 감독 하정우는 배우 하정우에게 빚졌지만, 언젠가는 감독 하정우가 배우 하정우에게 그 빚을 갚을 날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남자다운 게 뭔가요?

두려움에 대하여 · 232

 

내가 동행을 선택하는 법

신과 함께 · 238

 

두 다리로 그린 이탈리아 미술지도

관광 아닌 유학 같은 여행 · 243

- 밤이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한강을 따라 걸으면서 하루 일과를 정리했다. 그때 평균적으로 하루에 여섯 시간씩은 걸어다녔던 것 같다. 걸으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었다. 배우란 분명 선택받는 직업이지만, 그 선택받을 수 있는 무대까지 걸어가는 것은 내 두 다리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슬럼프 선생님

배우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 271

- 티베트어로 인간걷는 존재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 삶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없다면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 숲에서 크는 어린 나무들은 도심에 옮겨 심은 어린 가로수와는 달리 훨씬 더 단단하게 성장하고 오랜 세월을 산다고 한다. 키 큰 어른나무들이 뜨거운 빛을 적당히 통제해주어 튼튼하게 자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무들이 모여 있으면 서로 영양분을 나누면서 성장한다. 이렇게 나무들은 숲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어린 나무는 그 안에서 기후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뿌리를 뻐어간다.

 

내가 만난 노력의 장인들

노력의 밀도를 생각한다 · 279

- 박찬욱은 엄청나게 노력하는 감독이면서 동시에 노력의 밀도가 다른 예술가였다. 그 치밀함은 그저 세심하고 예민한 성미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영화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보통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노력은 그 방향과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

-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기와 절망 속에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때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노력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모른 채 힘든 시간을 그저 견디고만 있는 것을 노력이라 착각하진 않는지 가늠해본다.

- 처음 봤을 때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몸에 활력이 넘치고 표정도 생생하다. 배우에게 그 첫인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디션이 번개 같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면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든 잡아채고 싶었다. 오디션은 삼 분 안에 결정되는 잔혹한 경쟁이지만, 보석은 그 짧은 시간에도 스스로 빛을 발한다고 믿었다. 내 몸에 기운과 에너지를 늘 충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걷는 자를 위한 기도

인간의 조건 · 288

비단 신을 믿지는 않더라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우연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 등 외부에서 오는 절대적인 힘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내 마음을 다 이해할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나에게 남은 것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과 기도뿐이라는 사실을. - 290 붉은눈

 

나의 오늘을 위로하고 다가올 내일엔 체력이 달리지 않도록 미리 기름 치고 돌보는 일. 나에게 걷기는 나 자신을 아끼고 관리하는 최고의 투자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깨닫고 적용할 점

- 우울증이란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몸마저 무거워져 버리는 것이다. 일단 생각을 멈추고 걷기를 시작하자.

- 그냥 걷자. 내 경우 맨발걷기를 했을 때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하정우는 하루 3만보를 걸었다고 한다.

- 적극적 휴식을 위해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기가 중요.

- 걷기의 선순환(고민 생김-걷기-먹기-씻기-자기-고민 해결?)

- 집밥 잘 해먹고 다니기

- 50분 걷고 10분 쉬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