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은 경제 개발을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대규모로 파견했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와 독일 정부 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국에 외화를 유치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파견 현황>
1. 광부
기간: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규모: 약 8,000명.
업무: 석탄광에서 채굴 작업.
근무 환경: 좁고 위험한 갱도에서 하루 8시간 이상 작업하며, 고된 노동 환경을 견뎌야 했습니다.
수입: 평균 월급은 약 600~800 마르크로, 절반 이상을 한국으로 송금하여 가족을 부양하거나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2. 간호사
기간: 1966년부터 1976년까지.
규모: 약 13,000명.
업무: 병원, 요양원 등에서 간호 및 간병 업무를 담당.
근무 환경: 고령 환자의 간병, 청소, 식사 보조 등 힘든 업무를 도맡아야 했습니다.
수입: 광부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많은 간호사들이 송금을 통해 가족을 지원하거나 유학을 위한 자금을 모았습니다.
<배경>
한국의 상황: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실업률이 높았으며, 외화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독일에 노동력을 수출함으로써 고용 문제를 해결하고 외화를 획득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상황:
전후 경제 부흥을 이루고 있었으나,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한국의 근면성과 교육 수준이 높은 노동력이 독일 측의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성과 및 영향>
경제적 기여: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송금한 외화는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포항제철 등 대규모 산업 발전 자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사회적 변화:
파독 경험을 통해 한국과 독일 간의 관계가 강화되었습니다.
해외 노동자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국제화가 촉진되었습니다.
<파견 당시 삶>
문화적 차이와 언어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성실함과 적응력으로 현지에서 인정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일부는 독일에 정착하여 한인 사회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한국 경제 성장의 숨은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들의 노력과 헌신은 현대 한국사에서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독일로 파견된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 중 상당수가
현지에 정착하여 거주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독일에 거주하는 파독 광부는 약 800명이며,
이 중 절반인 약 400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파독 간호사에 대한 정확한 거주 인원 수치는
공개된 자료가 부족하여 정확한 수치를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포함한 독일 내 한인 사회는
약 4만 8천여 명으로, 유럽 최대 규모의 한인 사회로 발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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