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은이),이주영 (옮긴이),스테판 르멜 (사진)책세상2017-08-30원제
: Les evapores du Japon: Enquete sur le phenomene des disparitions volontaires (2014년)
책소개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매년 10만 명이 실종되고 있다. 이 중 85,000명이 스스로 증발한 사람들이다. 체면 손상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실직과 빚, 이혼, 낙방 같은 위기 앞에서 집을 나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슬럼 지역 등에 숨어들어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간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와 그녀의 남편이자 사진작가 스테판 르멜은 2008년 우연히 증발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알게 되고, 이 이야기에 끌려 ‘인간 증발’의 어두운 이면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취재를 통해 파괴된 인간, 그리고 그들을 방기하고 착취하는 일본 사회의 충격적인 민낯을 만나게 된다.
도쿄에서부터 오사카, 도요타, 후쿠시마까지 5년에 걸쳐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증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의 슬픈 과거와 시대의 암울한 초상을 취재한다. 과거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회·문화적 현상들이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우리에게서 되풀이되는 모습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또 증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일이기에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목차
프롤로그 9
1. 야반도주 13
2. 증발하는 사람들 23
3. 은밀한 사업 37
4. 하시의 고백, 증발 26년 47
5. 일본의 불가촉천민 57
6. 시골에 숨어들다 71
7. 산야, 지도에도 없는 도시 79
8. 마키오의 고백, 증발 65년 95
9. 지옥의 캠프 101
10. 오타쿠의 성지 115
11. 실종자를 찾는 사람들 123
12. 아야에의 고백, 증발 21년 137
13.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 149
14. 사라진 청년, 그리고 북한 159
15. 토요타 시, 떠나거나 병들거나 미치거나 177
16. 덴지의 고백, 증발 33년 189
17. 자살 절벽, 도진보 195
18. 증발한 사람과 야쿠자 209
19. 테루오의 고백, 2년 만에 귀가 223
20. 후쿠시마의 연기 233
에필로그 250
책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의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숨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P. 24~25 ‘증발한 사람들’의 운명은 비명횡사하거나 영영 잊히거나 둘 중 하나다. 다른 길은 없다. 세계에서 일본만큼 ‘증발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없다고 그가 말했다. 인구 1억 2800만 명의 일본에서 증발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무모하면서도 흥분되는 도전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 내게서 이 이야기를 들은 스테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두 달 뒤, 우리는 문화적으로 낯선 일본으로 향했다. 불가사의한 현상을 취재할 수 있다는 확신만이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후지산이 보이는 아타미 해수욕장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17세기 에도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명성이 이어지는 곳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상상력을 발휘해 온천과 증발자들의 운명을 연결시켰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에 유황 가득한 온천의 수증기 속에서 과거를 깨끗이 씻어내려고 찾아온 도망자들의 이야기는 책과 영화, 연극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같은 은유에서 증발을 뜻하는 일본어 ‘죠-하츠’가 유래되었다.
P. 84~85 마사오는 이제 갓 스무 살의 청년으로 요 위에 앉아 담배 연기를 동그랗게 내뿜는다. 요 주변에는 여행가방이 열려 있고 노트북이 켜져 있다. 산야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데 벌써 삶의 희망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입시에 실패하고 교도소에 다녀온 후 살던 도시에서 스스로 증발했다고 한다. 부모님에게 사회적으로 못난 아들로서 수치심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수치심과 증발은 모두 못할 짓이지만 마사오는 이 중에서 그나마 후자가 낫다고 생각해 그 길을 선택했다. “아마 가족은 제가 죽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제가 왜 떠났는지는 이해했겠죠. 아무도 절 찾지 않을 겁니다.” 잠시 후 담배의 동그란 연기가 올라온다.
“낯선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P. 140 아들은 학교에 있었다. 남편의 봉급은 내가 관리하고 있었다. 우리 집 예금을 전부 인출했다. 그리고 대문도 걸어 잠그지 않은 채 그대로 나왔다. 아들을 버렸다.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까? 나는 이 나쁜 짓을 했다. 갈 곳은 알고 있었다. 나름 계획이 있었다. 열차를 타고 떠난다. 모자를 써서 얼굴을 숨긴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 뭐든 각오가 되어 있다.
P. 155 “일어난 일은 산산이 부서져버린 접시와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본래 상태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카프카의 해변> 중에서
P. 185 회전 초밥집의 컨베이어 벨트 위로 생선회가 담긴 작은 접시들이 마치 조립 라인 위의 부품들처럼 퍼레이드를 벌인다. 도요타에서 은퇴한 반항적인 성격의 와카츠키 다다오는 오징어와 생선회가 담긴 접시들을 선택해 탁자에 놓는다. 노조의 그 어느 조합원도 용기를 내 발언하지 않지만 그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 “도요타는 일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도요타의 잘못된 경영철학을 고발하는 것이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압력은 많지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장의 조립 라인이 내는 지옥 같은 소리에 미쳐버린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과로로 죽어가는 사람들, 피로와 절망감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P. 219 그는 아들의 일기장을 몇 분 동안 넘겨본다. “아들의 집세는 지금도 계속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프면 치료비로 쓸 돈은 조금 저축해두어야 하니까요.” 아키라 씨는 울지 않는다. 침착한 그의 모습을 보니 이제까지 일본에서 실종자 당사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도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아키라 씨가 상자를 닫더니 지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아들의 사망 신고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숲속에 위치한 이 차가운 거실에서 스피커로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오고 있다.
P. 243 찌는 듯 무더운 저녁, 젊어 보이는 남자 세 명이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 남자는 희망을 위해 건배한다. 한 남자가 이들에게 다가와 일자리를 제안했다. 적어도 두 달 동안 숙식이 제공되는 일이다. 쓸고 닦고 쓰레기를 자루에 담는 작업이다. 쓰레기의 정체는 원전 폐기물, 핵먼지. 내일 이 세 명은 후쿠시마에서 원전 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을 할 것이다. 어차피 가출한 사람들이라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누구도 찾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P. 87 “더 이상은 못하겠더군요. 저녁 7시가 넘어도 돌아갈 수 없었어요. 전에는 퇴근 후 상사나 동료들과 한 잔 하러 가곤 했으니까요. 길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아내와 집에 돌아갔는데 아내와 아들이 의심하는 것 같더군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가져다줄 월급도 없었고요.” 원래 같으면 월급을 받았을 그 날, 노히리로는 말끔히 면도하고 아내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후에 평소에 타던 지하철을 이용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그는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증발해버렸다.
P. 118-119 그는 엄격한 교육, 어디서나 늘 최고가 되어야 하는 사회적 압박을 언급한다.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압박과 직장 스트레스가 대표적이다. 맷은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일본의 속담을 인용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맷은 오타쿠들이 이런 압박 때문에 가상의 세계에 빠지고 현실과는 다른 삶을 상상하며 ‘사라져 간다’ 고 힘주어 말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이 도피는 아니다. 사랑과 자유를 꿈꾸기도 하고 소소한 것, 코스프레, 노래, 춤이나 손동작에 만족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일본 사회는 다른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캐릭터를 통해 개성을 뽐내고 일상을 우상에게 바칩니다.” 맷이 말한다. 어린 시절에 머물면서 환상 속에 사는 것, 개성 표현이 거의 허락되지 않는 일본 문화에 나름 반항하는 방법이다.
P. 199 그에 따르면, 자살과 증발 모두 사회적인 절망의 표현으로 그 원인은 똑같다. 실적, 자기반성, 자기희생을 강요받으면서도 끝없는 경제 위기로 인해 빈곤해지다 보니 일본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는 힘을 휘둘러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모리배나 악덕 사채업자. 일부 고용주들을 비난한다. 또한 그냥 운명이려니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비판한다. “증발이라든지 사무라이 할복 같은 일본 악습 뒤로 숨어드는 일이 이제는 없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증발을 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문제가 있을 때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 243 아리무라는 증발한 사람들을 이렇게 생각한다. 외롭지만 자유로운 사람들, 외로움 대신 완전한 자유를 얻은 사람들.
P. 242 실직과 수치심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두고 집을 나왔다. 가족과 딱 한번 다시 만났으나 이미 거리감이 생긴 후였다. 그는 인생이 칠판과 같다고 생각한다. 검은색 칠판에 색분필로 내용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꿈을 그리지만 너무나 빨리 지우개로 지워진다. 남아 있는 것은 결국 검은색과 흐릿하게 지워진 기억뿐이다.
P. 85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사회를 벗어난 우리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서서히 자살해가는 셈이죠.˝
P. ˝가족과 지인들은 사회에서 도망치는 것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본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실패는 개인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죠.˝
P. 128 사카에가 보기에 일본 열도는 ‘압력솥‘ 같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려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다.
P. 129 <국화와 칼> 일본인 자신들도 이 책을 대표적인 일본 연구서로 꼽는다. 일본인들은 과거의 관습 속에서 살아간다. 일본인들은 넓은 의미에서 윗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진다. 이 빚을 갚는 것은 체면과 관련된 문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 빚을지지 않으려 애쓴다.
P. 167 ˝세월은 흐르고 우리 부부는 점점 늙어가고 있습니다. 나오리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보다 더 오랜 세월 이 일을 안고 살아야 할 큰아들은 더 힘들죠.˝ 나오리의 어머니도 거든다. ˝나오리 소식만이라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오리가 원치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나오리가 필요하다면 돈도 보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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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프랑스 이방인이 추적한 현대 일본의 불행관찰기. 그 결론은 인간증발이다. 매년 수천 명이 가출 후 되돌아오지 않는 기현상에 주목한다. 연 10만의 실종사례 중 상당수를 증발인간으로 본다. 죽었거나, 사라진 경우다. 잊히는 건 시간문제다. 의문스러운 건 자발적인 증발 의지로, 스스로를 지우고 사라진다. 제나라이건만 불법체류자처럼 과거와의 완벽한 단절 속에 고립된다. 인파를 피해 숨어들 곳은 많다. 도시든 시골이든 증발인간의 비밀공간은 많다. 컴백은 없다. 이름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 얼굴도 바뀐다. 도망이라 도전은 없다. 왕왕 규칙도 표준도 없이 갑자기 존재감을 확인시키기도 한다. 그러곤 다시 떠난다. 망각의 두려움과 기억에 대한 간절함 탓이다. 가족과의 재회는 생존확인에서 끝난다. 해피엔딩은 없다.
책은 그 원인을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 탓으로 돌린다. 압력솥처럼 변한 사회가 압력을 견디지 못한 사람을 수증기처럼 증발시킨다는 분석이다. 재도전을 불허하는 사회에서 몸부림쳐도 현실무게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이들은 잊혀진 존재의 삶을 택한다. 자살이든 증발이든 이는 사회적인 절망표현일 따름이다. 경쟁과 빈곤이 인간성의 상실로 귀결됐다. 수치심과 좌절감, 자괴감이 이들을 사회규범이 통하지 않는 신분세탁의 증발지대로 내몰았다. 도쿄 북부의 빈민굴 산야(山谷)처럼 지도에서 이름은 지워졌지만, 증발인간들은 실종자, 부랑자, 범죄자라는 동류의식 속에 서서히 자살해간다. 책은 사회문제를 다뤘지만, 소설처럼 쉽게 읽힌다. 직접적 문답질의와 간접적 상황묘사는 인간증발의 구조와 실태를 적절하게 표현한다. 관련사진을 그때그때 섞어내 문제의 심각성을 시각적으로 잘 묶어냈다. 현대사회가 던지는 압박과 치욕의 무게감이 구구절절 확인된다. 일본사례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한국사회의 제반현실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얼음장 같은 현실 속에서 증발카드를 선택한 일본의 슬픈 민낯은 곧 우리의 얘기일 수밖에 없다.
책을 읽은 후
일본을 공부하면서 '조하츠'라는 사회 현상에 흥미가 생겨서 읽어본 책이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삶의 모습이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어쩌면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이 있었다면 나도 증발하고 싶었을 것 같다...(그런데 한국 내에서 증발하는 것보다 외국으로 증발했을 듯.) 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뭐.. 그런 기분을 강제적으로 참고 지나가니 좋은 시절도 오더라만은...
책을 읽으며 파칭코에 나오는 선자네 큰 아들이 떠올랐다. 이름도 신분도 모두 숨기고 새로 시작하는 삶. 무언가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이 현상은 실제로는 절대로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절망의 이름과 닮아있다.
가끔은 회피하고 싶은 상황이 있고 도망가고 싶은 때가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편이 좋다. 언젠그 그 시간도 지나가 있을테니까.
일본도 한국과 많이 닮아있다. 압력솥같은 사회. 그래도 우리는 일본에 비해 좀더 표출을 하며 사는 사회가 아닐까 한다. 세상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안 힘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서로 실수를 용납해주고 격려해주는 그런 사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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