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은 1937년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후, 낯선 환경과 척박한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농업을 개발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쌀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과 인내가 필요했지만, 고려인들은 지혜와 끈기로 이를 극복해냈습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농업에 대한 전문 지식 활용
많은 고려인들은 원래 연해주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농업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쌀 재배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환경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벼농사에 필요한 모내기와 물 관리를 철저히 계획하였으며,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그들의 농업 지식을 바탕으로 작물을 심고 가꾸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2. 용수 확보와 관개 시스템 구축
중앙아시아는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기후여서 벼 재배에 필수적인 물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이에 고려인들은 인근 강이나 호수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간이 관개 시설을 만들고, 인력을 동원해 물길을 확보하는 데 힘썼습니다.
강을 따라 제방을 쌓고, 물을 모아 벼농사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이 벼 재배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3. 공동체의 협력과 노력
고려인들은 서로 협력하며 개간 작업과 농업 개발을 함께 수행했습니다. 가족 단위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협력하여 황무지를 일구고, 각자가 가진 농업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며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초기에는 농기구와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원시적인 도구와 방법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끈기 있게 함께 일하며 이주 지역의 척박한 토양을 일구어 나갔습니다.
4. 토양 개량과 재배 방법의 적응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의 황무지가 토양이 척박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토양을 개량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유기물을 첨가해 지력을 높이고, 모내기와 벼농사에 적합한 토양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토양과 기후에 맞는 벼 품종을 시험하고 적응시키는 과정을 거쳤으며, 이를 통해 지역 특성에 맞는 벼 재배법을 확립했습니다.
5.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끈기 있게 재배 지속
고려인들은 초기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벼농사를 계속 시도했습니다. 몇 번의 작물 실패가 있었으나, 결국 그들은 성공적인 쌀 생산에 이르게 되었고,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생존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6. 성공과 그 영향
고려인들의 벼 재배는 중앙아시아에 새로운 농업 기술을 소개하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벼농사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 재배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지역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처럼 고려인들은 강제 이주로 시작된 어려운 상황에서도 탁월한 농업 기술과 끈기를 바탕으로 황무지 개간과 벼농사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고려인들의 생존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벼가 자라는 동안 고려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 동안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고려인들은 다음과 같은 생존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1. 재배 가능한 다른 작물 경작
벼는 재배와 수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그동안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다른 작물을 함께 경작했습니다. 밀, 보리, 옥수수, 감자 등 비교적 빨리 자라는 작물을 심어 식량을 확보했습니다.
이러한 작물들은 초기 식량 확보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특히 감자와 보리는 성장 속도가 빨라 주요 식량 자원이 되었습니다.
2. 야생 식물 채집과 낚시
고려인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야생 식물, 열매 등을 채집해 식량으로 삼았습니다. 중앙아시아에는 야생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비타민과 영양을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는 근처 강이나 호수에서 낚시를 하여 물고기를 잡았으며, 이는 단백질을 공급하는 중요한 식량원이 되었습니다.
3. 가축 사육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경우에는 소규모로 닭, 염소 등의 가축을 사육했습니다. 가축은 달걀, 우유, 고기 등을 제공하여 영양을 보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가축 사육이 제한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규모가 커져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4. 지역 주민과의 물물교환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의 기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거나 도움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노동력을 제공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식량이나 다른 필요한 물품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인들은 지역사회와 협력 관계를 맺었으며,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5. 공동 식량 분배와 협력
초기에는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공동체가 서로 나눠 먹으며 협력하였습니다. 각 가정에서 확보한 식량을 함께 나누어 부족한 식량 상황을 견디고자 했습니다.
농사가 안정되기 전까지 고려인들은 식량을 공동으로 관리하며, 필요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6. 소련 정부의 일부 배급 지원
소련 정부는 이주 초기 고려인들에게 제한적인 식량 배급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배급량은 충분하지 않았으나 초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식량이 되었으며, 다른 식량 확보와 병행하여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고려인들은 벼농사가 안정되기 전까지 다양한 작물 재배, 채집, 가축 사육, 물물교환 등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며 생존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극심한 기근 상황에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이후 안정적으로 벼농사를 시작하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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