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타이왕국(Kingdom of Thailand)으로 ‘쁘라텟 타이’라고 합니다.
‘타이인의 나라’이며, ‘타이’는 ‘자유로움’을 뜻합니다.
스스로를 ‘콘타이’, ‘차우타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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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000년 경
선사시대
우던타니의 반치앙 선사유적지에서 기원전 3,000년 경의 신석기 유물이 출토되고 반까오에서는 기원전 2,000년 경의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태국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6세기에서 10세기에는 타와라와디문명이 존재했는데 이때 불교문명이 크게 발달하였고 9세기에서 13세기에는 몬족의 불교왕국인 하리푼차이가 번성하였습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적입니다. 이곳에서 초기 농경이 이루어지고 금속 제조 기술이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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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13세기
쑤코타이왕국
1238년 씨인트라팃이 북부 태국에 건국하였습니다.
13세기 람캄행 왕 때는 영토가 크게 늘어나 라오스, 미얀마까지 확대되었고 스리랑카에서 상좌부 불교를 받아들이고 1283년에는 타이문자를 창제했습니다. 불교의 지나친 번성으로 1438년에 아유타야왕국에 병합이 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섬(暹, Xian)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1259년 태국 북부에 멩라이가 란나왕국을 건설했고 1296년에 치앙마이를 수도로 하였습니다.
쑤코타이보다는 북쪽에 자리하여 다양한 민족을 수용한 왕국이었으며 19세기에는 랏따나꼬씬왕조에 병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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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1767년
아유타야왕국
1350년 라마티버디 1세가 창건한 왕국입니다. 단일 왕계가 아닌 5왕가가 번갈아 가며 지배하여 33명의 왕이 417년간 다스렸습니다. 신분제도인 싹디나제도가 있어 왕과 왕족(짜오나이), 관료(쿤낭), 평민(프라이), 노예(탓)로 구분되었습니다. 지배 계급인 짜오나이와 쿤낭은 토지와 작위를 받았습니다. 피지배계급인 프라이는 평민으로 생업에 종사하였고 최하계급인 탓은 지배계층을 위해 각종 노동을 제공하였습니다.
중국, 일본 등과 활발한 무역을 통해 국력을 신장시켰고 16세기 초에는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 등의 교류로 무역과 포교가 이루어졌습니다. 1688년 나라이왕 때 개종 문제로 서양과의 교류를 단절하였고, 1767년 아유타야왕국은 버마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아유타야 1350년 건설된 아유타야왕국의 수도로18세기 미얀마에 의해 훼손되기는 했지만많은 사리탑과 사원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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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1782년
톤부리왕국
딱씬이 1767년 톤부리에 수도를 정하고 세운 왕국입니다. 짝끄리와 쑤라씽하낫 형제의 보좌로 15년간 통치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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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1932년
랏따나꼬씬왕국
1782년 짝끄리가 랏따나꼬씬왕조의 라마 1세로 즉위하였습니다. 방콕(Krungthep)을 수도로 정하고 동생 쑤라씽하낫을 부왕으로 임명하여 나라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라마 2세 때는 포르투갈, 영국 등에 문호를 개방하고 라마 4세 때에는 태국의 독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서양 세력을 수용하였습니다. 1855년 영국과 바우링조약을 맺었는데, 이는 태국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불평등조약이었습니다. 조약 비준을 한 1856년에 처음으로 국호를 싸얌(Siam)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서양 각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교통통신시설을 개선하고 영어 교육을 하고, 군대의 현대화, 화폐 개혁 등 태국 근대화에 힘썼습니다. 라마 5세 때에는 부복제, 부역제, 노예제, 도박장 등을 폐지하고 징세제도를 바르게 하고 신식 교육제도 등을 개선하였습니다. 또 태국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 영국 등에 태국 영토의 일부를 양도하였습니다. 서양식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와치라웃왕자 등을 영국에 유학시키며 태국의 서구화에 힘썼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라마 6세는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1917년 미국 등과 함께 유럽전에 참가하였고 전승국으로서 국제연맹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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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현재
입헌군주국
1932년 라마 7세 때 입헌군주국이 되어 국왕의 권한이 약화되었습니다. 1780년 건국된 랏따나꼬씬왕조는 1939년에 국호를 싸얌에서 태국으로 바꾸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 프랑스에 양도한 국토를 찾기 위해 일본과 공수동맹을 체결했으나, 반일항쟁 등을 통해 국제연합에 가입하고 태국의 비공산화에 힘썼습니다. 1967년에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함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발족하였으며 이후 1999년까지 브루나이,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이 가입해 총 10개국이 되었습니다.
현재 국왕은 라마 10세로 2016년 즉위했습니다.
자료의 내용과 그림은 국립민속어린이박물관 다문화꾸러미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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