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인(재일동포)들이 주로 영세업에 종사하거나, 실업률이 높고, 저임금 노동을 하는 이유는 역사적·사회적·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1. 역사적 배경: 강제징용과 차별적 출발점
일제강점기(1910~1945년)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온 조선인들이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로 시작했습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은 대부분 탄광, 건설, 공장 노동자로 착취당했습니다. 패전 후(1945년) 일본이 식민 지배를 끝내면서, 조선인들은 일본 국적을 상실하고 법적·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 처음부터 재일한인들은 일본에서 사회적·경제적 약자로 출발했고, 기득권이 없었음.
2. 국적 차별과 법적 제약
국적 문제: 1945년 이후 재일한인들은 일본 국적을 상실했지만, 한국이나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 남았습니다.
차별적 법 적용: 일본 정부는 재일한국인을 외국인 취급하며,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공무원 취업 금지, 대기업 취업 제한, 주택 대출 어려움 등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일본 내 공립학교 교사나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은 일본 국적이 있어야 가능했고 일본의 대기업들도 재일한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하지 않으면서 좋은 일자리에 접근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 좋은 직장에 들어갈 기회 자체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자영업이나 육체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3. 경제적 불평등과 영세업 의존
직장 차별로 인해 자영업(소규모 사업), 행상이 생존 전략이 되었고 일본 사회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힘들었던 재일한인들은 야키니쿠집(고깃집), 파칭코(도박), 가게 운영, 시장 상업 같은 영세 자영업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파칭코 산업(일본의 슬롯머신 게임)은 재일한인이 크게 진출한 대표적인 업종입니다. 1세대가 자영업을 하면, 2세대·3세대도 이어서 같은 업종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 대기업에서 일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부모가 하던 가게를 이어받거나, 비슷한 업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재일한인들이 영세업 중심으로 일하게 된 것은, 직장 차별로 인해 '생존형 자영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4. 교육 기회 부족과 저임금 노동
일본 사회에서 재일한인들은 교육 기회에서도 차별을 받았습니다. 국적 문제로 인해 일본의 장학금이나 취업 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조총련(북한계)과 민단(한국계) 사이의 정치적 갈등도 교육 기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재일한인 전용 학교(조선학교 등)를 나온 경우, 일본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학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교육 차별 → 취업 차별 → 저임금 노동의 악순환이 이어졌고, 학력이 낮거나, 일본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배경이 있으면, 저임금 육체 노동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심지어 고학력을 가진 재일한인들도, 국적 차별로 인해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웠습니다.
➡ 교육 차별과 취업 제한이 저임금 노동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5. 일본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편견
일본 내 재일한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
재일한인들은 종종 ‘외국인 노동자’ 또는 ‘반일 감정이 있는 집단’으로 인식되었고, 일부 일본인은 재일한인을 ‘범죄율이 높다’, ‘일본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한, 재일한인이 대기업이나 공직에서 일할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일본 사회의 구조적 차별이 재일한인들의 직업 선택을 제한하고, 저임금 노동자로 남게 하는 원인이 되었어.
결론: 왜 재일한인들은 영세업, 저임금 노동을 많이 하는가?
1. 역사적으로 가난한 노동자로 시작했기 때문 → 출발부터 사회적·경제적 약자였음.
2. 일본 정부의 차별 정책 → 공무원, 대기업 취업이 어려워서 영세업에 의존하게 됨.
3. 자영업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 → 파칭코, 야키니쿠집 같은 영세업 중심으로 발전.
4. 교육과 취업 차별 → 저임금 노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
5. 일본 사회의 편견과 차별 → 재일한인이 더 좋은 직업을 얻기 어렵게 만듦.
➡ 결국, 재일한인들은 처음부터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했고, 일본 사회의 차별이 지속되면서 영세업이나 저임금 노동에 머물 수밖에 없었음.
➡ 하지만 최근에는 고학력 재일한인이 증가하고, 차별이 완화되면서 의료·법조·IT 등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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