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자폭탄 당시 한국인 피해자 수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인 피해자 규모
총 피해자 수: 약 7만~10만 명으로 추정
사망자 수: 약 2만~3만 명 (전체 희생자의 약 10~20%)
부상자 및 후유증 피해자: 약 5만~7만 명
➡ 나가사키 원폭까지 포함하면, 총 1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
2. 왜 한국인이 그렇게 많았을까?
1)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1945년 당시, 일본은 조선인을 강제징용하여 군수공장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도록 했고 히로시마에는 미쓰비시 조선소, 군수 공장 등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가 많았습니다. 특히 히로시마 우지나(宇品) 항구, 군수 공장,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 등에서 많은 조선인이 일했습니다.
2) 조선인 거주 지역과 피해
히로시마에는 약 5만 명 이상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원폭이 떨어진 도심과 공장 지대에 조선인들이 많아 피해가 컸습니다. 특히, 조선인 노동자들은 방공호(대피 시설)를 이용할 권리가 없어 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3) 피해 이후 –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
일본 정부의 차별
일본 정부는 원폭 피해자들에게 의료 지원을 제공했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고 일본 사회에서도 조선인 원폭 피해자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차별을 겪게 됩니다.
한국 귀국 후 방치
원폭 생존자 중 일부는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한국 정부도 오랫동안 이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한국인 원폭 피해자 후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4. 결론
히로시마 원폭 당시 약 7만3만 명이 사망.
이들은 대부분 강제징용된 노동자와 일본 거주 조선인들이었으며, 원폭 피해 이후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함.
현재도 일부 생존자와 후손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보상과 의료 지원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음.
'잡다한 지식들 > 한국의 제외동포와 재외동포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윤원: 인도네시아에 뿌리 내린 독립운동가 (10) | 2025.04.18 |
---|---|
재일한인의 경제적 현실: 영세업과 저임금 노동의 역사적 배경과 구조적 차별 (11) | 2025.04.17 |
박종석의 히타치 취업 차별 사건(1970년) (2) | 2025.04.13 |
일본 사법시험 합격자 김경득: 재일한인 인권 운동의 선구자 (2) | 2025.04.12 |
재일한인은 일본 학교 교사가 가능한가 (2) | 2025.04.11 |